그 어느때보다 교회안에서 평신도의 역할이 크고 막중한 시대에 우리는 신앙생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교회안에서 많은 기관이 있고 부서들로 세분화 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고 영향력 있는 기관이나 부서 또는 위원회가 있다면 선교부일 것이다. 교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을지 언정 그 역할이나 기능은 비슷할 것이라 추정되는 것은 해외선교 및 국내선교를 통틀어 선교직임을 감당하는 기관이나 부서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교회가 크든지 작든지 선교를 담당하는 부서는 있기 마련이다. 한국교회가 약 8만개 정도 있다고 추정한다면 8만명 정도의 선교위원장이 있다고 생각할 때 선교적 관점으로 볼 때 이들의 영향력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즉 선교위원장들이 선교에 분명한 열정과 선교현장에 대한 인식을 갖고 제역할을 감당한다면 세계선교지도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거대한 세력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선교위원장의 현실

대부분의 교회에서 선교위원장들은 평신도들이 맡아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평신도라는 한계가 그 역할과 기능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라 생각하여 그 역할과 기능을 잘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선교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나 넓은 이해가 없는 경우가 많아 선교사나 전문 사역자 그리고 담임목회자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면, 선교위원장으로서 교회안에서 선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지 못하는 경우가 현실이라고 하는 것이다. 반대로 선교위원장의 역할을 잘 감당하게 된다면 지역교회에 선교의 새바람을 일으켜 지역교회의 역동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일에 크게 쓰임 받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선교위원장의 역할과 기능

선교위원장은 해외선교 및 국내선교에 관련된 제반 사항들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갖고 있어 해마다 변화하는 선교상황에 대응하여 선교현장의 필요를 채우는 일에 지역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인적자원과 물적자원을 동원하는 일에 기여하는 역할이 선교위원장의 역할이며 이러한 일을 감당 할 때 교회안에서 유기적인 조직으로서 그 기능을 건강하게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재정 후원을 결정하는 단체나 교회를 선정하는 것을 뛰어 넘어 세계복음화의 관점에서 지역교회가 감당해야 할 책임과 역할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지역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일을 행동으로 옮기도록 하는 일에 선교위원장들이 쓰임 받는다면 오늘날의 선교현장은 한층 온기가 넘쳐나는 선교현장이 될 것이다. 물론 선교위원장들이 이 일에만 매달려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생업이 있고 부차적인 다른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교위원장 이라는 막중한 소임은 소홀이 해야 할 직임이 아니기에 다시한번 그 역할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선교위원장의 잠재력

선교위원장이 관여하는 많은 결정들이 있을 것이다. 선교지를 결정하고, 후원자를 발굴하고, 선교사 후보생을 추천하고, 선교기관을 선정하고 그 밖의 담임목사님을 도와 행하는 수많은 선교적인 어젠다가 있을 것이다. 이런 결정의 과정에서 영적으로 깨어 있고, 선교현장과 선교에 대한 넓은 식견과 이해를 바탕으로 선교사역에 대한 결정을 하게 된다면 그 잠재력은 참으로 크고 놀랍게 될 것이다. 교회가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다. 즉 선교가 예수님의 방향으로 갈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나님 말씀에 기반한 선교결정, 선교현장의 필요에 대한 능동적 결정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실천을 앞세워 선교위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결정한다면 참으로 건강한 교회요 건강한 선교사역을 진행해 나갈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분명 다른 교회나 기관에도 분명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선교위원장의 잠재력은 무궁무진 하다 할 것이다.

선교위원장은 크루즈가 아닌 전함의 사령관이다.

배는 크게 나눠 크루즈라고 하는 유람선이 있고 해상 전투에 쓰임 받는 전함이 있다. 유람선은 배를 타고 다니며 해외나 국내외 여행을 하며 편안함을 추구하는 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전함은 전쟁에 투입돼서 전투에 참여한다. 언제 어떻게 기뢰가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적의 상태를 파악하고 때로는 선제 공격도 마다 하지 않는 긴박한 상황에 투입된 배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배임에 틀림없다. 오늘날의 선교는 한마디로 말해 영적 전쟁터라 할 수 있다. 선교현장에서 사탄의 세력에 맞서 싸워 이겨야 하는 전쟁터에 우리 모든 믿음의 성도들이 놓여져 있다. 만일 선교위원장이 유람선을 타고 편안함을 추구하며 안식을 꾀한다면 분명 선교사역에 대한 아무런 진전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적 전쟁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전투를 지휘한다면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선교위원장은 수동형이 아니라 능동형 이어야 한다.

선교위원장은 누구의 요청에만 응하는 수동형이 아니라 선교현장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찾아 나서 그 필요를 채우고 충족시켜 선교현장의 변화를 꾀하여야 한다.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보면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부족함을 예나 지금이나 절실히 느끼고 있다. 능동형 위원장이 되고자 함에 장애가 있다면 언제든 도움을 청하라, 배워라, 찾아라! 지금은 네트워킹 시대요, 파트너쉽을 구축할 때이다. 그래서 선교적 지식이나 이해가 누구 한 개인이나 교단 그리고 단체의 것일 수 없다. 그리스도인 공동체 한에서 한 뜻을 이루기 위해 나누고 공유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능동적으로 선교현장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선교위원장은 급변하는 선교현장의 필요에 대처해야 한다.

21세기 선교현장은 정치, 사회, 종교, 그리고 경제와 문화 그리고 이념적인 갈등으로 인해 수시로 급변하고 있다. 선교현장의 문이 갑자기 열리기도 하고, 갑자기 문이 닫히기도 한다. 특별히 코비드19 팬데믹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들이 있다. 코비드 때문에 선교현장에서 철수 해야만 하는 곳이 있는 반면에 전혀 문제없이 선교사역이 진행되고 있는 곳들이다. 선교현장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와 용단이 선교위원장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물론 완벽한 전문가를 요청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교현장이 변화하고 있고 변하고 있는데 아무런 대응이 없는 것이 문제이고 대안이 없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한 명의 선교위원장은 지역교회의 선교 동참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선교사역은 교회의 본질이요,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인 상황가운데서 중심을 바로잡고 올바른 선교사역을 감당하게 하는 일에 가장 큰 기여를 하는 지도자다. 그런 면에서 담임목사님과 함께 건강한 선교사역을 위해 봉사하게 된다면 그리고 그런 상황이 저변에 확대된다면 지역과 나라와 열방을 변화시키는데 분명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분명 이 사실은 이상이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차근 차근 도전해 본다면 언젠가 이상의 나무에서 현실이라는 풍성한 과일의 열매를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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