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issionary perspective of the offering of Macedonian and Corinthian churches : based on 2 Corinthian8-9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를 기록할 당시 제3차 전도여행을 하고 있었다. 기원후 약53년에서 57년의 일이다. 그리고 2차 전도여행때 개척하고 1년6개월을 함께 사역하며 지냈던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결심은 아마도 마게도냐 지역교회를 방문하며 머물렀던 어떤 특정한장소에서 고린도후서를 기록하였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정한다. 특별히 3차 전도여행때 사도 바울에게는 큰 임무가 지워져 있었다. 그것은 예루살렘교회의 어려운 상황을 직시하고 마게도냐 지역과 아가야 지역의 교회들을 방문하여 어려운 예루살렘교회와 기근 가운데 있은 성도들을 돕는 일이었다. 즉 쉽게 말해서 선교현장의 교회들을 방문하여 선교헌금 또는 구제 헌금을 모아가지고 오는 그러한 사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본문의 상황은 선교적 관점보다는 목회적 관점에서 훨씬 더 자주 사용되어져 자칫 선교적의미가 퇴색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에 목양적 관점에서 헌금에 대한 해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선교적 특수성이 반영된 문화에서 기인했다고 볼 때 여러가지 특별한 의미들을 고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루살렘에 긴급 구호가 필요했다.(Jerusalem church needs emergent relief.)

로마서 15장26절에 보면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 하였음이라.” 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하면서 자신은 이제 예루살렘으로 갈 계획이다. 그리고 거기서 그동안 받은 헌금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실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구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있을 때에도 예루살렘 교회를 향한 구제가 있었다. 아마도 추정컨데 안디옥의 선교현장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구제했던 것처럼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는 이번에도 선교현장의 교회들인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교회들이 구제에 동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3차전도여행을 하면서 동시에 그 사명을 감당하지 않았을까 추정해본다.

구제헌금은 이렇게 하라!(Give a donation likewise!)

실제로 누군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헌금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아가야 지역도 아니고 마게도냐 지역에 있는 성도들도 아니고 저 바다 건너 타국의 타문화에 살고 있는 유대인이라 할 수 있는 성도들을 기억하고 헌금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도 바울은 아주 친절하게 구제헌금은 이렇게 준비했다가 내가 그곳에 가거든 그때 성의 없이 하지 말고 준비한 헌금을 드리도록 안내하고 있다. 고린도전서16장 2절에 보면 “매주 첫날에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 설명하고 있다. 조금씩, 조금씩 모아 두었다가 그것을 구제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갑작스럽게 많은 돈을 모으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감당할 수준으로 조금씩 모은다면 예상치 못한 큰 금액이 될 수도 있고 적은 금액일수 있겠지만 큰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매우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현지의 성도들이 모두 참여해서 의미 있는 도움을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에게 주고자 했었을 것이다.

마게도냐지방 교회의 헌금에 대한 열정(the passion of Macedonian churches towards offering)

 마게도냐 지역의 성도들은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고후8:2)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감당했다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랑하고 있다. 사실 마게도냐지역의 대표적인 교회는 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교회 그리고 베뢰아교회 교회였을 것이다. 그중 특별한 교회가 있다면 빌립보교회 일 것이다. 빌립보 교회는 그 시작부터 선교사역과 후원에 동참한 교회라고 빌립보서 1장5절에 언급하고 있다.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아울러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사도 바울의 쓸 것을 제공했던 교회가 바로 빌립보교회 였던것이다. 또한 마게도냐 교회들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사역하고 있을 때에도 부족한 비용을 후원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고후11:9절에 “너희와(고린도교회성도들)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 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라고 사도 바울은 고백하고 있다. 이렇듯 마게도냐교회의 선교헌금에 대한 열정은 정말 대단했던 것을 말씀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선교 헌금 또는 구제헌금(Mission offering or relief offering)

 성도들에게 가장 친숙한 헌금은 아마도 십일조와 주정 헌금일 것이다. 그 이외에도 각종 각양의 다양한 헌금이 있다. 분명 고린도후서에 언급하고 있는 헌금은 규칙적으로 하는 십일조나 주정헌금과는 달리 예루살렘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한 일회성 헌금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즉 선교헌금인데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구제헌금이 가장 목적에 부합하는 헌금의 명목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헌금에 동참한 교회들을 통해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도울수 있었던것은 초대교회가 우리에게 보여준 가장 큰 교훈이 될 것이다.

이방인 성도들의 헌금(the offering of gentile believers)

  초대교회 당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엄격한 신분과 문화 그리고 다양한 차별이 존재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물론 이방인들이 유대인을 보는 관점과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보는 관점이 달랐겠지만 본문에서는 분명 이방인들로(Gentiles) 구성된 성도들이 성도의 사랑으로 유대인 성도들에게 보내는 헌금이었을 것이다. 사실 유대인성도들은 이방인들이 보내온 헌금을 섣불리 받을수 없었을 수도 있다는 추정이 나오는 대목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방인들의 처지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가난한 성도들에게 “넘치는 기쁨과(overflowing joy) 극심한 가난(extreme poverty)”(고후8:2)속세서 헌금했다고 말하고 있다. 어떤 면에선 예루살렘 모 교회 성도들보다 훨씬 더 헌금에 대한 성숙한 자세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또한 우리도 선교현장에 있는 고통받고 가난에 처한 우리의 이웃을 위해 헌금해애 할 분명한 성경적 목표를 우리는 사도 바울을 통해 배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신생교회의 헌금(the offering of new churches)

 마게도냐지역의 교회들과 아가야 지역의 교회들은 사도 바울의 2차 전도여행때 새롭게 개척된 교회들이다. 그리고 다시 3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예루살렘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헌금을 요청하고 있다. 시간적으로 보면 채 10년이 되지 않은 적게는 4-5년 미만의 신생 교회들이었다. 이런 교회들의 성도들이 사도 바울의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답하여 기쁨으로 연보를 할수 있었던 저력이 무엇이었을까? 초신자들의 헌금은 매우 자발적이었다고 사도 바울은 기록하고 있다. 이들의 순순한 선교열정이 먼 타국의 성도들을 영향 헌금으로 섬길수 있게된것이다. 또한 신생교회들의 주축이 된 지도자들의 헌신과 희생도 큰 역할을 감당했다. 회당장 유스도나 그리스보가 예수를 영접하고 많은 초신자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는 구성원이 되어 사도 바울의 사역에 큰 힘이 되었다.(사도행전18:7-8) 또 성경에 보면 에라스도와 같은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명망있는 인물이 바울의 선교사역을 돕는 사람이었다.(행19:22) 로마서16:23에 보면 에라스도는 고린도의 재무관이었다 즉 로마제국 당시의 사회지도층으로 재정적 영향력이 매우 큰 사람인데 사도바울의 선교사역에 큰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었다. 즉 영향력 있는 사회 지도층이 신생교회의 구성원이 되어 신생교회의 초신자들에게 큰 믿음의 헌신에 도움을 주었고,  신생교회의 초신자들이 힘에 지나도록 헌금을 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 준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신생교회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유럽을 복음화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고린도교회의 헌금(The offering of Corinth)

사도 바울 일행이 2차 선교여행을 할 때 아덴을 지나 고린도에 도착해서 회당을 중심으로 전도사역을 시작했다. 고린도는 교통의 요지, 상업의 중심, 아가야지역의 행정수도로서 정치, 경제, 행정, 그리고 수많은 신전들이(아폴로신전) 모여 있는 매우 중요한 거점도시였다. 사도 바울은 이곳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 1년반동안 선교사역을 감당하며 고린도교회를 개척했다. 신생교회인 고린도 교회를 다시 방문하기전 사도바울은 마게도냐에서 고린도 후서를 기록하면서 9장2절에 보면 마게도냐 교인들에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이미 1년전부터 연보에 참여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것을 볼 수가 있고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연보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소식이 오히려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에게 큰 자극이 되어 그들이 큰 연보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신생교회, 이방인교회, 부유한 고린도교회나, 가난한 마게도냐 교회들이 십시일반 해서 어려운 예루살렘교회를 도왔던 일은 선교사 바울의 선교사역의 큰 헌신일뿐만 아니라 말씀을 받은 영적으로 빚진자들이  가난한 성도들을 위하여 물질로 도와야 하는 마땅한 일을 잘 감당했던 초대교회의 훌륭한 전통을 볼수가 있다. 결론적으로 마게도냐지방의 교회와 아가야지방의 헌금은 분명 선교적관점으로 볼 때 가장 큰 교훈으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의 교회와 문화에도 매우 적절한 성경적 해석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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